
대부분의 남자들이 말했다. "남의 애 가진 여자를 계속 좋아한다는게 말이나 돼?" 여자들도 거들었다. "현실에 저런 남자가 어딨어?"
뻔히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을 알면서도 이상적인 역할을 맡은 박건형(35)은 좀 답답하기도 했을 듯하다. 그러나 지나치게 완벽하면서 착한 조은성이 답답하지는 않았는지 묻자 박건형은 단호하게 "노!"라고 외쳤다.
"조은성을 표현할 때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판타지'였어요. 저 멀리 보이지 않는 먼 곳에 있는 판타지가 아니라,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조금만 노력하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판타지요. 이런 요소가 드라마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리고 조은성을 이해하기 위해 고민했어요. 내가 바라보는 대상은 아이를 가진 황지안도 아니고 일에 빠진 황지안도 아닌 그냥 '당신'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더라구요."
박건형은 또 강변했다. 왜 미국은 되고 한국에서는 안 되나? 미국 드라마에서는 '아이두 아이두'보다 더 어처구니없는 인물 관계가 많은데도 관대하게 보면서 한국 드라마에서는 왜 안 되느냐는 것이다.
"미드는 되는데 왜 우리 작품들은 그렇게 보수적이고 고지식한 시선으로 바라볼까요? 이에 대한 첫 번째 펀치를 날리고 싶었어요. '이런 남자가 왜 없어? 있어!'라고 보여주는 거죠. 미드에서라면 황지안이 두 남자를 다 데리고 살아도 아무 생각 없이 볼 거란 말이죠. 하지만 한국 드라마에서 안타까운 지점은 박태강이 아기의 생물학적 아버지이기 때문에 지안은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렇지 않다면 시청자들도 불편해 할거고요."
마음 단단히 먹고 '황지안의 멘토가 돼 보자, 동시에 동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이 멘토가 되고 싶다'고 시작한 그에게도 알 수 없는 묘한 슬픔은 있었다. 지안이 아이를 낳은 직후 '태강'(이장우)과 '광석'(박영규)에 둘러싸여 행복해 하는 장면을 찍을 때다.
"은성은 의사로서 멀찌감치 떨어져 차트를 들고 있는데 가족들이 아기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슬펐어요. '박건형'이 '조은성'을 바라보며 슬펐던거죠. 그 순간 조은성이 너무 안쓰럽더라고요."
2001년 뮤지컬 '더 플레이'로 데뷔한 박건형은 뮤지컬 무대와 드라마, 영화를 종횡무진하며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다. 올해만 해도 상반기에 JTBC 드라마 '신드롬'에 출연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두 아이두'에서 연기했고 드라마 종방 직후에는 8월 개막하는 뮤지컬 '헤드윅' 연습에 한창이다. 지치지는 않았을까.
"즐거우니까요. 내가 느끼고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어요. 작품의 연속성에 주목하는 분들이 많은데 저로서는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일을 마음껏 즐기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작품과 제가 만난 것은 운명이거든요. 처음 연기를 시작했을 때 좌절하고 허덕이고 포기하기도 했는데 다시 서 있잖아요. 지금 내 안의 모든 것을 끄집어내는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감사한 일이죠. "
여러 장르를 오가면서도 박건형은 친정인 뮤지컬이 제일 좋다. 날것의 긴장감을 즐기는 것이다. "무대에서는 온 몸의 센서를 다 켜야 돼요. 배우가 관객들에게 완벽하게 노출되니 허점 하나 숨길 수 없이 적나라한 거죠. 두렵기도 하지만 두려움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 모두를 즐기고 있어요."
요즘 박건형이 깨달은 가장 큰 일은 '여성들이 이렇게 불편하게 사는구나'다. '헤드윅'에서 트랜스젠더 '헤드윅' 역을 맡은 그는 치마를 입고 화장을 하고 가발을 써야 한다.
"치마 입는 게 이렇게 허한 느낌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브래지어) 어깨끈이 이렇게 중요한 거구나 싶기도 하고…. '이렇게 갑갑한 걸 어떻게 매일 차고 있지?' 대단하기도 해요. 관객들은 헤드윅을 박건형이 연기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만 무대에서 한 순간만이라도 '저 여자'로 보이고 싶어요. 일식현상이 일어나듯 박건형이 헤드윅 안으로 들어가서 숨는거죠."
절친한 유준상(43)은 KBS 2TV 드라마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 출연하면서 '국민 남편'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어여쁜 아내(홍은희), 귀여운 두 자녀와 행복한 가정을 꾸린 그를 가까이 지켜보며 부러울 만도 하다.
"좋은 모습만 보니까 백번이라도 결혼하고 싶죠. 그런데 그렇게 좋은 모습 보이기까지가 힘든 것을 아니까 아직 엄두가 안 나요. 내가 느끼는 행복과 상대방이 느끼는 행복의 접점이 맞는 사람이 생기면 결혼할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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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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