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6월 30일 토요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 이민정 있다…'빅'


【서울=뉴시스】김정환 기자 = KBS 2TV 월화드라마 ‘빅’(극본 홍정은·홍미란, 연출 지병현)이 시청률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TV드라마 속 달달한 ‘로코 황태자’에서 지난해 사회고발 영화 ‘도가니’를 통해 진정성 있는 배우로 거듭난 공유(33), ‘여신’ 이민정(30), ‘국민 첫사랑’ 수지(18)를 포진시켰지만 경쟁작들의 벽은 너무 높기만 하다.

그러나 찬찬히 이 드라마를 보다 보면 남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바로 이민정의 팔색조 연기다.

여주인공 ‘길다란’을 맡아 첫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한 이민정은 방송 초반에는 전작들에서의 청순 우아함과 180도 다른 어리바리한 숙맥으로 등장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다 약혼자 ‘서윤재’(공유)가 제자 ‘강경준’(신원호)와 영혼이 체인지되는 사건 이후에는 점점 벼랑 끝으로 다가서는 윤재를 향한 사랑 탓에 늘 눈물을 지으며 뭇 남성 시청자들을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란은 윤재의 몸으로 윤재 어머니를 따라 미국으로 갔다가 1년 만에 돌아온 경준(공유)과 재회한 뒤 윤재의 몸을 한 윤재가 몸만 윤재이지 영혼은 경준임을 까맣게 모르는 윤재 어머니가 세영과의 결혼을 추진하는 바람에 상황에 떠밀리듯 윤재의 몸을 한 경준과의 결혼에 대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그러나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경준의 몸 속에 영혼으로 남아 있는 윤재를 향한 그리움을 차마 떨쳐내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으로 인해 자기 곁을 지켜달라는 윤재의 몸을 한 경준의 부탁에도 차마 손 잡아주지 못하고 다시 미적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경준이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해 아픈 상처를 지니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늘 상대와 주변의 눈치만 보며 자신의 감정을 숨기기만 하고, 선택을 앞두고 용기를 내기보다는 포기하고 돌아서던 소극적인 태도를 벗었다. 의연하고 당당하게 자기 앞에 놓인 상황을 직시하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윤재와 동료 의사 ‘이세영’(장희진)과의 관계를 의심하면서도 차마 세영에게 따져 묻지 못하고 가슴앓이만 하던 다란이 “홍차가 녹차될 때까지 패주겠다”는 말로 쏘아붙이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세영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한 번 해 보세요. 애국가에 나오는 남산 위 저 소나무처럼 철갑을 두른 듯 잘 서있을 거니까”라고 당당히 맞섰다.

몸만 윤재이지 영혼은 경준인 것을 전혀 모르는 세영이 윤재 어머니를 등에 업고 윤재와의 결혼을 추진하고 있는 것에 대한 선전포고인 셈이다. 다란은 이것도 모자라 자신에게 프러포즈하는 윤재의 몸을 한 경준에게 “강경준, 장가 와라. 잘 키워 줄게”라면서 청혼을 받아들였다.

다란은 기간제 교사로 출발해 윤재의 몸을 한 경준이 없던 1년 사이 임용시험에 합격한 뒤 정교사로 지위만 높아진 것이 아니었다. 이 드라마가 시작됐을 때 윤재의 몸에 빙의된 18세 소년 경준의 성장 스토리로 여겨졌지만, 사실은 몸은 어른이면서도 어른이 되지 못한 다란이 진짜 어른이 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성장 스토리이기도 했던 셈이다.

자신보다 모든 조건이 완벽한 윤재에 대해 다란이 갖고 있는 콤플렉스와 그에 따른 불안한 사랑, 윤재와 세영 사이의 상황을 짐작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는 다란의 나약함, 윤재의 모습을 한 경준이 윤재와는 딴판으로 자신을 향해 보여주는 마음에 조금씩 다른 감정이 생겨나면서 혼란스러워지는 다란, 상처 입은 경준을 보듬어주며 단단한 어른으로 점차 성장해 가는 다란을 ‘멜로 여신’ 이민정은 때로는 백치미 같은 해맑은 미소, 때로는 눈가에 어리는 물기, 때로는 눈빛의 흔들림이나 설레는 듯한 표정 등 섬세한 연기로 표현해내며 시청자들를 매료시키고 있다.

결혼에 골인한 다란과 윤재의 모습을 한 경준이 신혼여행을 떠나기 위해 간 공항에서 경준의 영혼이 윤재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듯한 신비한 체험을 하는 장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로 인해 경준은 윤재의 영혼을 지닌 경준(신원호)의 몸이 깨어날 것임을 직감하면서 앞으로 흥미진진한 스토리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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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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